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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담론집 성와유고 誠窩遺稿
성와유고간행위원회
출간일 | 2009년 7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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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3264-09-8 03040 |
페이지 | 276페이지 / 판형 168*225 |
가격 | 비매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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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명
河萬觀 校長의 생각과 자취
천성이 효우하여 일찍이 생고의 훈계하신 바는 비록 세사라 하더라도 실천치 않음이 없었고, 자제에게는 은의를 구시하여 번창의 기반을 닦았으며, 종손으로서 사명과 긍지를 위선에 진성하여 선대의 미황사를 유루 없이 성취하였고, 40성상을 교육에 헌신하였으되 한시도 염증을 안색에 드러내지 않았으며, 선천적으로 아동을 애호하여 그 천진을 함께 즐거워하여 교직동료들의 존경이 지금토록 불변하고, 수학과 제자들의 모정이 장구히 불쇠하니 이로써 선생의 인품을 추찰할 수 있으니 선생이야말로 금세에 보기 드문 인격자이고 실천가이다.
몸에베인 선비정신, 지금세상 참선비라. 집안에선 修身齊家 學校에선 正道敎育.
丹池公의 宗孫으로, 名門家를 維護하여, 崇祖睦族 앞장서고, 孝道友愛 출중했네.
人才養成 天職삼아, 一生誠力 傾注했네. 敎育者의 典型이라, 稱道소리 藉藉하네.
子孫들이 昌盛한건, 公의積德 所致로다. 懿蹟모아 刻碑하니, 千秋토록 敎訓되리.
_성와하공묘갈명誠窩河公墓碣銘 병서幷序 중에서
서序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지낼 가까운 친구를 가졌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친구가 당한 환란을 내 것으로 대신할 수 있다면 세상을 살아감에 아무런 두려움도 없을 것이다.
내가 일생을 통하여 가장 친한 지기우知己友로 지내온 친구가 있으니 그가 바로 성와誠窩 하만관河萬觀 교장校長이다. 그런데 이제 그 친구가 타계한지 어언 1주기를 맞았다.
그렇지 않아도 성와誠窩와 영별永別 후 그와 다니던 길을 지날 때나 그와 놀던 곳을 들렸을 때 그와 같이 담소하던 교우交友들을 만날 때마다 그 친구 생각이 간절하여 혹시 꿈길에서라도 만날까 하고 그리워해 왔다. 그의 준식俊息 순봉舜鳳 의원議員이 선고先考의 유고집遺稿集을 간행할 뜻을 결정하고서 성와誠窩의 평생을 깊이 알고 있는 나에게 서문序文을 청하여 왔다. 미숙한 글재주이지만 그 자손들이 지난 날을 회억回憶함에 있어 한 가닥 보탬이 될까하는 생각에서 백사百事를 제쳐두고 흔쾌히 졸필拙筆을 들었다.
성와誠窩는 그 파선조派先祖 단지공丹池公 이래 12대 승종承宗으로 효행孝行과 우애友愛가 남달리 깊었으며, 학문을 즐겨 가까이 하였고 가풍家風으로 면면히 이어져 오는 예의범절이 너무나 깍듯하여 친구 사이라도 서로 함부로 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렇지만 사실은 마음이 온후溫厚하고 인정이 유달라서 나와는 허물없이 서로 다 열어 놓고 지내왔다.
그런 중에 선장先丈 묵재공默齋公이 수백 년 동안 먼지에 덮여 서고書庫 속에 싸여 있는 글과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는 선대들의 글을 수집하였으나 이를 편찬하지 못한 것을 늘 한으로 여기셨는데 성와誠窩가 선고의 그 뜻을 받들어 발간한 12대에 걸친 유고집인 지상세제록池上世濟錄을 보면 그의 효성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사업이며 가문의 영광을 널리 빛낸 크나큰 업적이었는가? 인근에서 학문을 아는 모든 이들이 이 업적에 대한 칭송을 아끼지 않았었다.
성와誠窩와 나는 약관시弱冠時부터 친하게 사귀어 왔다. 성와誠窩의 선장先丈 묵재공默齋公과 나의 선군先君 회당공晦堂公의 친교가 특별하여 서로 자주 왕래하다 보니 우리 두 사람의 사귐은 아주 자연스러웠고 때로는 시詩로서 서로가 회포를 풀기도 하고 때로는 유도儒道의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하면서 더욱 교의交誼가 두터워졌다.
때때로 묵재공默齋公이 성와誠窩에게 “너는 우리 단지선조丹池先祖의 12대손으로서 4백년 유망儒望으로 전해 내려오는 우리의 가성家聲에 누가 됨이 없도록 깊이 명심하여야 한다”라고 하교下敎하는 말씀을 나도 여러 번 같이 들었다. 성와誠窩가 평생을 교직에 몸 바쳐 온 것도 그런 하교下敎를 어기지 않으려는 데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성와誠窩는 매사를 처리함에 있어 급히 서둘거나 전전긍긍함이 없었으며 친구와의 사귐에 있어서도 지나친 농담이나 해학으로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고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항시 배려했다. 특히 마음을 열고 지내는 친구를 다른 이가 중상모략을 하려들면 도리어 그 사람을 가차 없이 타일러 바르게 알도록 하였으니 이런 의리로 항상 모든 친구들에게서 믿음과 존경을 받았다.
향리鄕里에 있는 단목세장丹牧世庄이 4백년의 세월을 지내오는 동안 비바람에 밀리고 씻기며 눈서리에 상하고 퇴락하여 붕괴 직전에 있음을 그는 항상 안타까워했는데 교직에서 정년퇴임하자 바로 이의 중건重建을 착수했다. 이 일을 행함에 있어서도 여러 종족宗族들의 의견을 참고하고 창건創建 당시의 제도와 규모에 대하여 옛 선대先代의 전형典型을 그대로 본받아서 새로운 건축재로 완전히 복원하였다.
이 환연煥然한 중건의 낙성落成을 본 종문宗門과 원근의 친지들은 환희와 경축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의 선조를 위한 정성과 높은 덕을 칭송하며 존경을 보냈는데 이는 꼭 나 자신이 이루어 놓은 일처럼 기쁨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성와誠窩가 평소 늘 바라고 이루어 보려고 한 것은 불우한 청소년 학생을 위한 장학사업이었는데, 지난해 10월 현식賢息 순봉舜鳳 의원議員이 그 유지遺志를 이어받아 ‘성와 하만관 장학회誠窩 河萬觀奬學會’를 설립하여 현재 불우한 지역사회의 청소년 육영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단지선생丹池先生 이후 세세손손世世孫孫이 유업儒業을 가도家道로 삼아 끊임없이 이어온 선조에 대한 효성孝誠을 다하는 아름다운 유풍遺風을 그 후대들도 이어받아 이번에 그가 가고 난 1주기를 기하여 동기同氣들과 자녀남매子女男妹가 정성을 합하여 유고집을 간행한다. 그 내용은 그가 평소 교단敎壇에서 실천하고 느꼈던 일들을 틈틈이 기술하여 놓은 것과 자녀후손子女後孫들이 지켜야 할 도리며 전해오는 가도家道를 흐트러짐 없이 잘 지켜갈 것을 당부한 글들을 정리하고 친구들과 자연을 즐기면서 경개풍월景槪風月을 읊은 시들을 모으고 그를 추모하는 친지와 벗들, 그리고 제자들의 모정慕情 어린 글들이며 장례때 족친族親과 사우士友들로부터 보내 온 만사輓詞, 제문祭文이며 그의 행록行錄과 연보年譜를 후세에 귀감이 되도록 정리하고 그의 자손이 부조父祖의 정을 다 나누지 못한 채 하세下世한 안타까움을 잊지 못하여 쓴 눈물어린 애닯은 사연들을 모아 성와유고집誠窩遺稿集을 간행하게 되었다.
그가 문사文士로서 크게 활약한 바도 없었고 그의 글이 서지書誌에 등재되어 많은 이들이 보아온 적도 없으나 이 나라의 참다운 교육자敎育者로서 항상 걱정하고 안타깝게 여겨온 교육 현장에서의 교권敎權을 바로 잡고자 노력한 흔적들이며 이세교육二世敎育을 담당한 교직자로서 가져야 할 정신과 행동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가를 깊이 성찰하도록 밝히고 있다. 그의 강직한 천품과 온화한 인정들이 담긴 인간 하만관河萬觀의 면모와 그의 교직관이며 교육에 대한 열정과 사상의 일면을 생시와 다름없이 만나게 해주는 그저 보통의 글이다.
이 보통의 글이 나에게는 명문화장名文華章 보다 깊은 맛과 느낌을 주는 점에서 그 값을 평하고 싶다.
대체로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하라면 개관후蓋棺後라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이 고금古今을 통한 진리眞理인데 이 유고집遺稿集을 통하여 그의 평소에 대한 많은 추모가 있기를 바라고 그의 영혼이 편안하고 극락極樂의 경지에서 영면永眠하기를 기구祈求하며 서序에 가름한다.
광복후光復後 43年 1987
丁卯 7月 13日 허 왕 구許汪九 서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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